
한국의 건강보험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는 2020년 시작됐다. 출발점은 단순한 문제의식이었다. 선별등재제도(2006년) 이전, 지금과 같은 엄격한 임상적·경제적 심사 없이 급여 목록에 올라간 약들이 여전히 건강보험 재정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2020년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시작으로 6년간 32개 성분이 심사대에 올랐고, 4개 성분이 퇴출됐다.
그리고 2026년, 제도가 바뀌었다.
1기 재평가(2020~2025)는 선별등재 이전의 오래된 약을 겨냥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급여에 올랐지만, 현재의 임상적 기준으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약들이었다. 그런데 2기부터 달라진 것은 평가 기준 자체가 아니다.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청구액 규모, A8 국가 급여 여부 같은 양적 기준으로 대상을 골랐다. 이제는 그 기준이 사라지고, “임상적 재검토 필요성이 뚜렷한 약제”라는 질적 판단이 선정의 중심이 됐다. 그리고 정부는 “필요하면 재평가를 반복할 수 있다”고 못을 박았다.
제도의 칼날이 더 넓어지고, 더 유연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장면을 주목해야 한다.
2026년 초, 정부는 실리마린 급여 삭제 소송에서 상고를 포기했다. 2021년 급여삭제 처분 이후 약 4년간의 법정 다툼을 스스로 끝낸 것이다. 그리고 불과 몇 주 후, 2기 재평가의 새로운 대상 선정 기준이 확정됐다. 그 기준이 발표되자마자 실리마린은 2026년 재평가 대상 3개 성분 중 하나로 편입됐다.
상고 포기 → 새 기준 확정 → 즉시 재평가 편입.
이 세 가지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법원은 무엇을 판단했는가
소송에서 정부가 진 이유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법원은 “실리마린이 효과가 없다”고도, “효과가 있다”고도 판단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평가 과정에서 관련 임상문헌 일부가 누락됐다는 점이었다. 약제의 유용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는 방법론의 완결성이 쟁점이 된 것이다.
제약사가 4년을 싸워 얻어낸 것은 “우리 약이 효과 있다”는 인정이 아니었다. “평가 과정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확인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처분은 취소됐다. 평가 결과가 아니라 평가 과정의 완결성이 법적 다툼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 판결은 제약사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평가 제도 전반에 던진 과제이기도 하다. 근거 중심 평가를 표방하는 만큼, 그 과정 역시 충분히 설명 가능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새 기준은 결과를 바꿀 수 있는가
정부가 상고를 포기하고 재평가라는 카드를 꺼낸 것은, 더 견고한 방법론으로 다시 평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번엔 “임상적 재검토 필요성이 뚜렷한 약제”라는 기준 아래, 이전보다 정밀하게 설계된 평가가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평가 방법론이 정밀해졌다는 것이, 곧 평가 결과가 더 정확해진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전에 법원이 지적했던 미비점을 보완해 동일한 방향의 결론을 더 견고하게 뒷받침하는 형태가 되는 것인가?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제도 개선이 진정한 의미의 근거 중심 평가를 향한 것이라면, 실리마린이 이번 평가에서 어떤 결과를 받든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방법론의 정비가 결론의 정당화를 위한 것이라면, 제약사 입장에서는 같은 싸움을 더 불리한 조건에서 다시 시작하는 셈이 된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구조는 질문을 던진다.
2026년 재평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실리마린이 급여를 유지할 수도, 선별급여로 전환될 수도, 다시 삭제될 수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법원이 평가 과정의 완결성에 보완을 요구했고, 정부는 그 요구에 정면으로 응답하는 대신 판을 새로 짜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새 판의 첫 번째 대상으로 실리마린이 올라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한 가지만 남는다. 평가 방법론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방법론을 설계하는 붓을 쥔 손과, 그 붓으로 그린 그림을 심사하는 손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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