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왜 이렇게 됐어요?” “다른 회사는 됐던데.” “좀 더 잘 해볼 수 없었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담당자는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수개월을 준비한 자료, 수십 번 다듬은 논리,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한 시나리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왜 못 했냐”는 한 문장 앞에서 지워지는 것 같은 기분.
이 글은 그 순간의 당신에게 쓰는 글이다.
마무리투수 이야기
야구에서 마무리투수는 경기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그 리드를 지켜내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런데 마무리투수의 성적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피안타율이 같은 두 투수가 있다고 하자. 이닝당 피안타 1개. 수치는 동일하다. 그런데 한 투수는 무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하고, 다른 투수는 1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한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피안타율은 같지만, 방어율과 패전 기록은 완전히 달라진다. 무사 만루에서 같은 안타 하나는 치명적이지만, 1사 1루에서는 버틸 수 있다. 투수의 실력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등판 조건이 달랐을 뿐이다.
결과는 조건이 만든다. 실력은 조건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약가 담당자의 일이 꼭 이렇다.
약이 좋으면, 할 말이 생긴다
솔직하게 말하자. 이 업계에 오래 있으면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혁신적인 약, 미충족 수요를 채우는 약, 임상 데이터가 탄탄한 약. 이런 약을 가지고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담당자에게는 할 말이 생긴다. 심평원에서 논거가 서고, 약평위에서 전문가들의 고개가 끄덕여지며, 공단 협상에서도 숫자에 대한 자신감이 달라진다. 국산 신약이라면 정부도 귀를 기울인다. 정책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임상적 차별성이 약한 약, 비교 대상 대비 우위가 불분명한 약, 시장에서의 위치가 애매한 약. 이런 약을 들고 들어가면, 담당자가 할 수 있는 것이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어도,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
이것은 담당자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등판 조건의 문제다.
그리고 담당자는 자신이 들고 들어갈 약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은 회사의 R&D와 사업 전략이 결정한다. 담당자는 주어진 악기로 최선의 연주를 할 뿐이다.
비난은 조건을 보지 않는다
문제는, 결과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이 조건의 차이를 잘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급여 등재에 실패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담당자다. 준비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 전략이 잘못됐던 것 아니냐, 관계가 안 되어 있던 것 아니냐. 이 모든 질문이 담당자에게 향한다.
무사 만루에 등판한 투수가 안타를 맞고 내려왔을 때, 관중석에서는 “왜 못 막았냐”고 말한다. 1사 1루에서 같은 안타를 맞은 투수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담당자는 그 비난을 홀로 받는다. 그리고 그 비난이 반복되면, 가장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 스스로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그 생각을 멈춰야 한다.
결과에 대한 냉정한 복기는 필요하다.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조건이 만든 결과를 자신의 실패로 내면화하는 것은, 이 일을 오래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이 글이 전하고 싶은 핵심이다.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결과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다. 마무리투수는 오늘 무사 만루에서 안타를 맞았다고 해서, 내일의 피칭 루틴을 바꾸지 않는다. 불펜에서 다시 던지고, 폼을 점검하고, 다음 등판을 준비한다. 그것이 프로의 방식이다.
약가 담당자의 페이스 유지는 이런 것이다.
이번 품목의 결과와 무관하게, 제도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공부를 계속하는 것. 각 회의체에서 어떤 논리가 작동했고 어떤 논리가 통하지 않았는지를 냉정하게 기록하는 것.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프로젝트 단위가 아니라 장기적인 시선으로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잃지 않는 것.
승패는 조건이 결정하는 부분이 크다. 그러나 실력은 조건과 무관하게 쌓인다. 지금 이 결과가 어떻든, 담당자가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더 좋은 약을 가지고 일했으면 어땠을까. 조건이 달랐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조건은 결과에 영향을 준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의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더 나은 조건이 왔을 때 그것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무사 만루의 경험이 있는 투수가, 1사 1루의 상황에서 얼마나 침착한지를 생각해보라.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조건이, 사실은 가장 단단한 훈련이다.
당신은 지지 않았다. 조건이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당신의 실력은, 그 조건과 무관하게 오늘도 쌓이고 있다.

